
오늘 들려줄 이야기는 <빅 피쉬>란다. 책표지가 정말 기가 막히지?
작가는 또 어떻고, 바로 팀 버튼이란다. 벌써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지는 걸 보니 그래, 이 사람이 만든 <비틀쥬스>나 <가위손>, <배트맨> 등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너희들이 무척 좋아했던 기억이 나는구나.
그런데 지난번에 <혹성탈출>은 영 아니었다고? 졸려서 꿈나라 가기에 딱 이었다고? 읽어주는 나는 어땠겠니. 재미없는 거 끝까지 읽어주느라 아주 욕 봤단다.
그래도 팀 버튼의 이름을 생각하면 <빅 피쉬>가 기대되는 마음은 숨길 수가 없구나. 너도 어떤 이야기일지 무척 궁금하다고? 그럼 지금부터 <빅 피쉬> 이야기 한 번 들어보렴.
1.
<빅 피쉬>는 대니엘 월라스라는 소설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블룸 가문의 허풍쟁이 이야기꾼 아버지 에드(앨버트 피니 분)를 못마땅해했던 아들 윌(빌리 크루덥 분)이 아버지의 과거를 추적하면서 느끼는 이해의 감정을 통해 가족애를 말하고 있는 작품이란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는 팀 버튼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런 따뜻한 가족애와는 거의 정반대에 위치한 것들이 아니었니. 자신의 정체성에 불안해하는 그늘진 느낌의 주인공하며 초현실적이고 어두컴컴한 분위기의 비주얼, 모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런 팀 버튼이 이전의 작품과는 사뭇 다른, 위와 같은 가족애를 다루는 영화를 맡게 되었다니 좀 의아스럽지. 그래서 처음엔 무슨 이야기든 가족주의에 대입하며 가족애라면 사족을 못 쓰는 스필버그가 이 작품에 눈길을 주기도 했단다. 그러나 <마이너리티 리포트> 작업 때문에 <빅 피쉬>는 결국엔 팀 버튼에게로 떨어졌는데 이 작품에서 아버지 에드가 들려주는 과거를 듣고 있자니 팀 버튼과 가족애, 이 생소한 조합이 상당히 잘 어울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왜 인줄 아니?
지금은 병들어 침대에 짱 박혀 있는 서글픈 처지지만, 엄마 뱃속에서 말 그대로 '뿅'하고 미끄럼 타며 태어난 윌의 아버지는 젊은 에드(이완 맥그리거 분) 시절엔 정말 대단한 모험영웅이었단다.
친구들이 무서워 접근도 몬하는 유리눈깔 마녀와 한 번에 친구 먹고, 마을의 평화를 위협하는 거인과 맞짱 떠 위기에서 구해내질 않나, 첫 눈에 반한 엄마 산드라(앨리슨 로만 분)의 연락처를 알아내기 위해 늑대인간과 혈투를 벌이지. 그 뿐 인줄 아니 산드라에게 청혼을 하기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황수선화를 마당 한가득 심어놓으니 그 황홀감에 어느 여자가 에드에게 안 넘어오겠니.
그래. 이제 이해하는 눈치구나. 에드의 현실과 판타지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동화같은 이야기가 팀 버튼의 환상적이고 기괴한 이미지와 잘 어울리고 있다는 얘기란다. 게다가 이를 통해 개떡같이 소원하던 부자사이가 찰떡처럼 가까워진다는 이야기에 이르면 어른을 위한 동화란 말이 저절로 떠오르지 않니. 그동안 <가위손>이라든지 <비틀쥬스>, <크리스마스 악몽>, <슬리피 할로우> 등등등도 나름대로 다 팀 버튼만의 독특한 이야기와 이미지가 돋보였던 성인용 동화였지 않겠니.
그런 점에서 보건데 <빅 피쉬>라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한 이야기는 유아기적(?) 감수성이 돋보이는 스필버그의 무조건적인 가족애보다 꿈을 현실로 창조한 듯 한 동화스러운 팀 버튼의 이미지로 풀어나가는 것이 한층 더 어울려 보이는구나.
2.
그런데 <빅 피쉬>에서 현실과 과거를 오가며 보여주고 있는 비주얼은 이전 팀 버튼 영화에서 보아왔던 그것과는 방식 면에서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단다. 일단 함 봐보렴. <빅 피쉬>의 이미지를 보면 어떤 느낌이 드니?
그래, 마치 따사로운 햇살이 깨끗하게 잘 재단된 정원을 내리쬐는 것처럼 따뜻하고 차분하며 정돈된 모습으로 비춰지지. 조형물로 잘 꾸며진 제한된 무대처럼 파격적이고 색깔 있으며 인공적이었던 전작들과는 많이 다를 거야.
팀 버튼은 이번 작품에서 컴퓨터 씨쥐나 블루 스크린을 가능한 한 멀리 하려고 했다지. 대신 현실에 아주 가까워 보일 수 있도록 노가다집약적인 작업을 했단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아래에 젖은 빨랫감 널어놓은 듯한 나무 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빨간 자동차가 보이지. 이걸 정말로 나무 위에 올려놓고 찍었다지 않니.
따뜻하고 차분하며 정돈된 느낌은 이런 수공업적 작업의 결과에서 기인한단다. 하긴 가족애를 다루고 있는 <빅 피쉬>가 팀 버튼의 과거 작품들처럼 기괴하고 어두운 이미지로 풀어간다면 아버지와 아들의 화해를 통해 우러나오는 가슴 흐뭇하고 감동적인 이야기가 어디 설득력을 얻을 수가 있겠니.
그래서 이를 두고 많은 평론가, 기자님들께서는 아버지의 죽음과 연관된 팀 버튼의 개인사를 들어 성숙해졌네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그 소리는 바꿔 말하면 강렬하고 파격적이던 비주얼이 <빅 피쉬>에서는 '얌전해졌다'는 의미일텐데 이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란다.
<빅 피쉬>가 팀 버튼의 작품이란 소릴 들었을 때 우리가 기대했던 건 팀 버튼의 머릿속 끝간데 모르는 상상력에서 펼쳐지는 일종의 밤에 펼쳐지는 롯데월드風의 풍요롭고 인공적인 광경이었지 않니. 그런데 이 같은 분위기가 이 작품에선 많이 죽어있다는 얘기란다.
물론, 많은 비로 인해 물바다가 된 그 속에서 상상의 여인이 헤엄치고 있는 광경이나 반지로 대어(big fish)를 낚는 동화같은 장면은 팀 버튼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이미지일테야. 그런데 이런 비주얼들이 그 자체로는 환상적이어도 영화 전체적인 분위기를 좌우하는 파급 효과까지는 내지를 못하고 있단다. 이는 <빅 피쉬>의 감상적인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한계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단다.
이 부분을 설명하기 전에 말이다, <가위손>의 에드워드가 매력적이었던 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가위손이라는 자신의 핸디캡으로 인해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떨어져 대신 그녀를 위해 눈을 만드는 그 순수함이 그의 무표정에서 뿜어져 나오는 허여멀건한 이미지와 합해졌기 때문이 아니니. 다시 말해 팀 버튼의 영화가 우리에게 환상적으로 기억되는 건 단순히 비주얼 때문이 아니라 그 비주얼의 성격을 만들어주는 이야기가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 점을 염두에 두고 <빅 피쉬>의 에드를 보렴. 그가 펼치는 모험을 보면 알겠지만 각 에피소드마다 '물고기는 큰물에서 더 잘 자란다', '운명은 늘 주위를 맴돌면서 사람을 놀라게 한다'와 같은 종류의 교훈적인 내용이 훈계하듯 깔려있단다. 모 그 의미는 좋으나 너희들도 알다시피 교훈이란 것은 직접적으로 다가오면 마치 교장 선생님 훈화말씀처럼 매우 고리타분하고 따분한 것이 아니겠니.
그러다보니 <빅 피쉬>는 이야기도 하품스러울 소지가 다분한데 여기에 더해 결정적으로 그 이야기를 가지고 풀어내는 비주얼 역시도 따라서 얌전하고 심심해지니 그 결과, 영화자체로는 매끈하게 잘 빠졌으나 이전 팀 버튼 영화에서 느꼈던 강렬한 맛은 아쉽게도 많이 지워져 있단다.
3.
우리가 함께 읽었던 팀 버튼의 <슬리피 할로우> 있지. 원래 <슬리피 할로우>의 원작은 <슬리피 할로우의 전설 The Legend of Sleepy Hollow>이라고 매우 따뜻한 작품이란다. 그런데 팀 버튼은 여기서 기본적인 설정만을 놔두고 이를 공포영화처럼 음울하게 처리하였단다. 기억들 나지.
이처럼 팀 버튼의 작품은 어떤 재료든 자신만의 비뚤어진 상상력을 기발한 이미지로 풀어낼 때 굉장한 매력을 풍겼단다. 뭐, 다 아는 얘길 왜 혼자만 아는 듯이 떠드냐고? 그럼 이건 어떠니?
무엇보다 그런 매력이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건 헐리웃이라는 제도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장르를 초월하고 과도한 감동을 동반한 감상적인 해피엔딩을 이끌어내지 않으며 무엇보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등 틀에 갇히지 않는 자유로움을 기반으로 하였기 때문이란다. 이거 역시도 다 아는 얘기였다고? 너희들 똑똑한 줄은 알았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구나. 기특한 것들.
어쨌든 <비틀쥬스>, <가위손>, <크리스마스의 악몽>, <슬리피 할로우>를 우리가 좋아했던 건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 아니었니.
그런데 이번 작품 <빅 피쉬>는 노골적으로 교훈적인 이야기도 그렇고 마지막에 거하게 선사하는 감동의 드라마도 그렇고 전작과는 달리 팀 버튼이 너무 헐리웃이라는 제도에 궁디 밀착한 것이 아닌가하는 안타까운 느낌을 지울 길이 없구나.
특히나 이번 작품의 주요 뼈다구를 이루는 에드의 젊은 시절 이야기는, <포레스트 검프>처럼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근현대사의 역사적인 사실들을 흐미하게 낑궈넣으며 그 때를 향수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인데 이런 류의 이야기는 사실 지네들이나 재미있지 우리까지 부화뇌동할 꺼리는 아니지 않니.
더군다나 미국의 소싯적 역사가 별로 도덕적이지도 그리고 그 역사가 주는 가르침이 그리 탐탁치 않은 걸 다 아는 상황에서 노골적으로 설파하는 교훈적인 이야기는 다소 불편한 구석이 있단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에드가 아들 윌에게 들려주는 뻥 반 허풍 반의 이야기는 그 행위 자체로 옳지 않지만 결국 중요한 건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진심이라는 주제와 연결시켜 막판 감동을 자아내는 연출을 보면 우리가 아는 팀 버튼과는 많이 달라진 모습으로 비추어진단다.
그래서 <빅 피쉬>가 이전 팀 버튼의 영화와 달리 헐리웃적이라고 앞서 언급한 건 바로 이와 같은 이유들 때문이란다.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제 모습이 유지되는 거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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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빅 피쉬> 이야기는 여기까지란다.
벌써 꾸벅꾸벅 조는 녀석도 보이고, 재미있게 본 녀석도 보이는구나.
그래, <빅 피쉬>는 바로 이런 이야기란다. 그 지루한 이야기에 눈이 감기는, 때로 순간순간 비춰지는 비주얼에 넋이 나가는 이야기. 다시 말해 뮝기적하다는 얘기란다.
그런데 <빅 피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뭐냐고? 뭐겠니, 확실히 팀 버튼의 작품은 가족애나 도덕책스러운 교훈 이런 모범적인 종류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지.
이것이야말로 <빅 피쉬>가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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